김국환건축사사무소

KKH Architects

김국환

Kim Kookhwan

건축설계 실무를 시작한지 15년, 소규모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한지 8년 째가 되었다. 해외 경험이 없고 오로지 한국에서만 건축설계를 했기 때문에 건축환경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는 할 수 없지만, 현재 국내 건축설계 업계의 현실을 직접 피부로 느끼는 상황과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거대담론보다는 최근에 직접 경험한 사항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특히, 2025년 현재 건축경기는 모두가 두려워할 만큼 바닥을 치고 있고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그 문제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충분한 설계기간의 확보

운좋게 두 번의 현상설계에 당선되어 공공건축물 설계를 할 기회가 있었다. 꿈꾸던 공공건축을 설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설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그 원인을 생각해보니, 현상설계는 건축기획을 거치면서 적정한 규모와 공사비, 그리고 설계기간이 결정되어 현상설계가 진행되며, 당선자는 이미 결정된 설계기간 내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최초 정해진 설계기간 내에 설계가 완료된 프로젝트가 과연 몇 개일까. 용역중지를 했다가 다시 재착수을 하거나, 설계기간을 늘려서 재계약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늘어난 설계기간에 따라 설계비를 재산정해서 받았다는 경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이 설계기간에는 각종 보고, 인증, 심의, 허가 등 실제로 설계하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설득하고 검증받는 시간을 모두 포함하며, 점점 강화되는 안전관련 법규에 따라서 설계자가 책임지고 작성해야할 자료들도 더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공사기간 산정 또한 설계자가 해야하는데, 공사기간을 산정할 때는 주말, 휴일, 기상에 따른 비작업일수, 준비기간 등을 모두 고려하여 산정한다. 하지만, 설계기간은 어떠한가. ‘계약일로부터 000일’로 명기되어 있지만, 어떻게 산정되었는지에 대한 근거가 없다. 설계자는 주말이 없고, 법정공휴일에도 일을 해야하는가? 아마도 프로젝트 규모, 예산에 따라서 정해지거나 발주처에 특수한 상황에 맞춰서 정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인데,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여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 BF인증, 지하안전영향평가 등 협의자체만 반년이 걸리는 과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는 현재 공공발주 시스템에서는 건축기획단계에서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며, 이에 따른 설계비 현실화도 되어야한다. 충분한 시간을 투입하지 않고 어떻게 양질의 건축물을 얻을 수 있는가.

설계비보다 더 큰 기회비용

가끔 작은 설계공모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제출한 계획안의 갯수가 40개가 넘어서 고생한 경험이 있다. 단순히 계획안의 개수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제출안들이 너무 퀄리티가 높아서 결정하는게 쉽지 않았다. 설계비 1억 이상 공공발주사업에는 설계공모를 진행하며, 이에 따라 연간 설계공모의 건수가 약 1,000건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설계공모가 많아지니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 같지만, 최근에는 민간시장의 불황과 겹쳐 공공건축 설계공모에 너무 많은 사무소들이 참여하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하나하나 계획안에 들였을 노력과 시간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무리 작은 현상설계라고 해도 최소 2주 이상의 시간을 온전히 투자했을 것이다. 물론 당선이 되면 이 투자는 보상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수포로 돌아갈 뿐이다. 선정되지 못한 3~40팀의 노고가 설계비의 가치보다 작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많은 에너지가 낭비되는 무한경쟁의 공모제도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허락받는 전문가

엄연히 전문교육을 받고 실무수련 후 자격시험을 합격하여 건축사로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건축인허가를 진행하다보면 전문가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허가권자를 대신하는 건축과 주무관을 대하다보면 법을 제대로 모르거나 과도하게 해석하여 설계진행에 제동이 걸리거나, 담당주무관이 바뀌면 의견이 바뀌어서 다시 협의를 해야하기도 한다. 또한, 심의를 받는 경우에는 심의위원들의 각종 의견들을 받아들여야만 상황이 생긴다. 건축이 다루는 범위가 매우 넓고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검토와 의견을 받아야한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건축가의 창의성과 자율성은 매우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짊어져야할 책임에 비해서 너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건 아닌지, 건축인허가 제도와 심의제도가 한편으로는 건축가를 허락받는 전문가로 만들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건축가 스스로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변화없는 작업방식

BIM 활성화 정책에 따라 특히 공공건축물 설계에서는 점점 BIM설계를 써야할 시기가 오고있다. 소규모 사무소에서 BIM 도구 적용은 여러 면에서 제한사항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설계도구의 변화는 매우 느리다. 필자의 주변에 BIM 설계도구를 활용하는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단순히 도구의 변화가 아닌 정보기반의 건축설계가 필히 진행되어야 하는데, 그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분명 생산성의 한계에 부딛히고 지금도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의 문화는 설계분야에 유능한 젊은 친구들이 유입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제는 작업방식을 바꾸지 않을 이유를 찾기 힘들다.

건축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