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Archicad를 메인 툴로 전환하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건축프로젝트의 특성상, 하나의 프로젝트에도 소요되는 시간이 길고, 몇 개가 물려있다보니 단기간에 메인 툴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학교 또는 회사에서 처음 접한 툴에 익숙해지고, 그 툴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가장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 경험으로는 지난 10년간은 스케치업+오토캐드가 그 중심에 있었고, 그 두가지 프로그램의 발전이 국내 건축설계시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앞으로도 당분간은 변하지 않을 이 견고한 조합에서 이탈하여, 현재는 Archicad와 Archidesign을 병행해 쓰고 있다. 이 선택은 매우 많은 리스크가 있을 것 같았지만, 경험상 딱 한가지 리스크로 수렴한다.

"협업의 제한에 따른 생산성의 정체"

남들은 다 .dwg의 오토캐드 파일과 .skp의 스케치업 파일을 쓰는데, 나만 .mdwg의 아키디자인 파일과 .pln의 아키캐드 파일을 씀으로 인한 불편은 협업의 경우에 발생한다. 문제는 건축은 100% 협업이 발생하는 분야라는 점이고, 각종 협력설계(구조토기전통소)회사와의 협업은 .dwg 파일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아주 많은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를 참아내며 진행해야하며, 프로젝트 전체를 봤을 때는 또다른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평생 모든 건축도면을 혼자 다 그리려는 1인 건축사사무소를 지향하는 몇몇 덕업일치 사무소를 제외하고는, 나말고 다른 건축가 또는 직원들과 협업하여 같이 도면을 그려야하는 현실을 인정해야하니, dwg 파일에 벗어나는 것은 당분간, 어쩌면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건축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생각보다 찾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스케치업에서 .skp 파일로 작업해 놓은 모델링의 각종 셋팅(컴포넌트, 그룹, 레이어, 재질, 뷰, 빛 등)과 아키캐드에서 .pln 파일로 작업한 사항이 서로 호환할 수 없음은 수십시간의 동안의 순간순간의 선택은 모두 뭉개버리고, 단지 껍데기만을 공유하는 함정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dwg와 .skp의 업계에서의 호환성을 포기하고 .mdwg와 .pln을 쓴다는 것은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이고, 왠만한 장점이 있지 않고서야, 쉽게 할 수 없는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 설계툴의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살아남으미즘'이다. 나의 주 활동무대인 중소규모 건축시장에서 (내가 건축을 전공한 2002년 이후로) 설계비는 오르지 않는다. 인건비, 공사비, 세금, 인증비, 임대료, 택시비, 버스비, 김밥값, 커피값 등 다른 비용들은 다 오르지만, 설계비는 제자리이다. 그렇다면, (나의 배운게 도둑질인) 건축설계로 먹고사는 방법은 '업무효율'을, '업무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밖에 없다. 그전에 시장에서 소나타가 3000만원인데, 5000만원에 소나타를 사는 소비자는 없음을 받아들여야한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이 이틀할 일을 하루에, 그리고 반나절에, 그리고 한시간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며, 그걸 찾는다면 나에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이 보장된다. 시간대비 효율의 비율, 시심비는 곧 생존이다.

손으로 그리든 발로 그리든, 연필로 그리든 출력을 하든, 종이에 출력하든 화면으로 보든, 건축가가 그리는 건축도면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은 시공자가 시공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릴지는 내가 정하면된다. "**협업의 제한에 따른 생산성의 정체"**를 극복하고 시심비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나에게는 아주아주 중요한 문제이고, 그걸 찾고자 노력중이다. 그동안의 몇가지 시도를 3개의 글로 정리하여,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1/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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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도면은 레고의 조립안내도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니깐.